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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미국 이야기/유학생 와이프 일기

[유학생 와이프] 시골쥐 뉴욕쥐

매주 남편 연구실의 그룹 미팅이 있다. 요즘따라 남편의 교수님은 학생들의 저조한 성과에 대한 불만을 자주 토로하곤 한다. 그때마다 남편과 학생들은 좌불안석...;;; 미국의 중부 한가운데 위치한 이 학교는 높은 랭킹에 대비해, 매우 시골 (달리 말하면, 지루한) 지역에 위치한 탓에 실력 있는 신입생을 유치하는 것도 쉽지 않아 신입생 모집 시기만 되면 교수님은 불만이 늘어만 간다.

 

"내 친구 중에 대도시에서 교수하는 애가 있거든. 그 학교는 우리 학교에 비할 수 없이 랭킹이 형편없다고! 근데 그거 알아? 걔는 들어오겠다는 학생들이 물밀듯 들어온대. 왜냐고? 학교가 뉴욕에 있으니까!!!! 이건 정말 너무 불공평해!"

 

한국 유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도시인 뉴욕! 한국인뿐 아니라 전 세계 유학생들이 살면서 경험하고 싶은 도시인가 보다. 미국 최대의 도시로서 상업, 금융, 무역,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뉴욕! 테이크 아웃 커피를 한 손에 들고, 맨해튼 거리를 걸으며 수업을 듣는 뉴요커가 된 자신을 꿈꾸는 유학생들! 

 

하지만 나 같은 경우, 한적한 중부의 소도시에서 사는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물론 20대 초반의 청춘남녀들이야 이런 도시에 있다 보면 우울증이 오기도 하지만 여유롭고 한적한 나름의 매력이 있는 곳이다. 물론, 아줌마 아저씨들도 시골에서 살다 보면 우울증도 오고 답답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가족 단위로 살기에는 나쁜 곳이 아니다. 뉴욕에서 공부하면 좋은 장점도 수십 가지일 테고, 시골에서 공부하면 힘든 점 역시 수십 가지일 테니... 이번 포스팅에서는 시골에서 공부하면 좋은 점만을 눈을 씻고 샅샅이 찾아내어 소개해보겠다.

 

 

 

1. 저렴한 생활비

이것이 가장 최고의... (혹은 유일한) 장점이다. 뉴욕의 원베드(침실 1개, 거실 및 부엌 1개, 화장실 1개)나 스튜디오(Studio, 한국의 원룸)가 $1,000~2,000이라고 하니 우리 동네 다운타운 렌트비에 비해 2~3배나 비싸다. 만약 우리 동네에서 월 $2,000에 아파트를 렌트하면, 마루가 쫙 깔린 신축 아파트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부엌도 빤짝빤짝 새것이고, 1층 로비는 카페처럼 꾸며져 있고 커피 머신이 있어 여유를 즐길 수 있고, 테라스에서는 무료로 요가 수업도 들을 수 있고 말이다. 

 

 

위의 사진은 NYPost에 소개된 스튜디오이다. 2년 전 렌트비가 월 $1,100이라고 하니 지금은 더 올랐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 이 가격보다 약간 저렴한 가격으로 오래된 학생 아파트의 투베드룸에서 살고 있다. (주차비, 전기세, 세탁비를 모두 포함된 것인데도 더 싸다!)

 

집값만 싼 것이 아니라, 시내에서 이용하는 주차비용도 저렴하고, 세금도 저렴하고, 식당에서 먹는 음식값까지도 저렴하다. 미국에서 조교를 하는 경우, 어느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던지 비슷한 수준의 급여를 받기 때문에 물가가 저렴한 지역에 거주하면 부모님의 도움을 덜 받을 수 있다.

 

2. 친절한 사람들

뉴욕 사람들이 매우 분주하고 불친절한 것은 온 미국에 소문난 사실이다. 같은 대도시임에도 L.A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워낙 큰 나라다 보니 대도시마다의 특성이 있다. 하지만 한국도 그렇듯이, 대개 대도시의 사람들은 바빠 보이고,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한적하고 여유 있어 보인다. 

 

행인들에게서야 큰 차이를 느끼기 힘들지만 특히, 상점이나 패스트푸드 매장 등 팁을 받지 않는 종업원들의 경우, 차이가 매우 크다. 뉴욕 식당들도 팁을 주는 레스토랑의 서버들은 친절한 편이다. 왜냐고? 친절해야 팁을 받으니까. 하지만 그 외, 마트나 스타벅스 같이 팁을 받지 않는 직원들은 여유 있게 인내심을 가지고 영어가 부족한 외국인을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바빠 보였다. 주문하겠다는 사람들의 줄은 줄어들지 않으며, 틈틈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있는 노숙자들을 쫓아내는 일까지 해야 하니 말이다.

 

 

내가 너무나도 공감했던 영화 '굿모닝 맨해튼 English Vinglish'의 한 장면이다. 우렁찬 목소리로 '다음 Next!'를 외치며 고객을 소환하는 기쎈 언니가 등장. 고객의 안부 따위는 전혀 궁금하지 않은 표정으로 'How are you doing today?'를 물어보고, 주인공이 못 알아듣고 대답을 못하자 내 질문에 대답부터 하라며 짜증을 부린다. 주문하려는 사람은 카운터에 서기 전, 미리 뭘 주문할지 다 정해야 하며 그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쓸데없는 질문 세례를 하면 곤란하다.

 

작년 여름, 1주일 정도 뉴욕 여행을 다녀왔는데 개인적으로 참 힘든 여행이었다. 바로 임신 초기여서 입덧이 심해서 컨디션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임신 사실을 알기 훨~~~씬 전에 예약한 거라 고민 끝에 여행을 다녀옴.) 찜통 같은 지하철 승강장에서 내려 걸어가면 뒤에서 "Ma'am, you should move faster!"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뉴욕 지하철 승강장이나 도로에서는 중간에 지도를 보거나 방향을 찾는다고 멈추어서면 안된다고 한다. 한 명이 느리게 움직이거나 멈추면  흐름에 방해가 되니까 말이다. 잠시 쉬기 위해 들렸던 도심의 스타벅스에서도 안 좋은 경험을 했다. 남편이 음료를 주문한 사이에 잠시 테이블에 엎드려 쉬고 있는데 종업원이 오더니 테이블을 '쿵! 쿵!'치고는 내게 나가라고 했다. 

 

힘든 뉴욕 여행을 마치고 우리 동네로 도착한 날. 끼니를 KFC에서 때우기로 했다. 매장은 매우 한산했고, 운전을 하다 들린듯한 중년의 남성 몇 명이 조용히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메뉴를 정하지 못해 카운터에서 살짝 물러나 메뉴판을 보고 있으니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앳띈 아르바이트생이 밝게 웃으며 "내가 주문 도와줄게. 뭐 궁금해? 이거 한 번 볼래?"하며 우리를 응대해줬다. 음식을 받아 테이블에 앉아 치킨을 먹고 있으니 한 할아버지가 와서 "이거 내가 주문한 음식에 포함된 건데, 난 쿠키 안 먹어서."라고 말하며 쿠키를 건네준다. 냉랭한 NYC attitude에 데었다가, 갑자기 KFC에서 만난 친절한 시골사람들에게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다지ㅋㅋㅋㅋ

 

 

그 외에도 꼽을 수 있는 장점이라면, 사람들이 패션에 신경을 안 쓰기 때문에 '편하게 다닐 수 있다'라던지, '의류비나 꾸밈비를 절약할 수 있다'도 꼽을 수 있다. 또한 교통이 혼잡하지 않고, 사람들의 운전 매너가 좋아 운전하기에도 좋다. 주차공간이 넉넉하기 때문에 초보자도 주차로 고생할 염려도 없다. 또한 지역에서 나오는 신선한 각종 육류, 계란, 치즈, 야채 등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마무리로 짧게 단점을 적으려 한다. (단점은 매우 많지만)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함께 어울여 저 지역사회가 꾸려지는 맛이 없다는 것이 큰 단점이다. 병원에 가면 모든 의료진이 백인이고, 관공서에 가면 모든 공무원이 백인이고, 각종 공연이나 행사장에도 백인뿐인 경우가 참 많다. 

 

한 번은 빈소년합창단 공연이 있어 바로 옆 도시로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빈소년합창단 공연이니만큼 600여 석 규모의 공연장이 가득 찼다. 놀라운 건 그 큰 공연장에 동양인은 나와 남편뿐이었다는 것이다. 수백 명의 백인 속에 둘러싸여 느꼈던 그 위화감은 나와 남편이 종종 떠올려보곤 하는 기억이다. 수년 전, 오스트리아에 여행을 갔다가 오페라 공연을 본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도 수많은 오스트리아 인들 사이에서 몇 안 되는 동양인으로 공연을 관람했다. 그때는 내가 유럽의 한가운데에 와있고, 문화를 즐긴다는 것이 참 낭만적이었고 행복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사는 곳에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동일한 경험이지만 내가 소수자이고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확인받는 기분이 든다.

 

타국에서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좋은 점을 바라보며 긍정적으로 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