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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미국 이야기/유학생 와이프 일기

[유학생 와이프 일기] 초보운전

미국에 와서 한동안 차 없이 버스 타고 다니거나 모임을 갈 때는 라이드를 부탁해 다녀서 불편한 점이 많았다. 큰 마음을 먹고 한 미국 할아버지에게 10년 된 중고차를 장만했다. 좋은 차는 아니었지만 기동성이 생기니 남편과 나의 삶에 큰 변화가 생겼다. 5~9시간씩 운전해가며 캐나다나 가까운 타주로 놀러 가기도 했고, 매주 다양한 마트를 다니며 장을 보았다. 또한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고... 집에 차가 생기니 또 다른 불평이 생겼다. 바로 내가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남편이 집에 있을 때만 차를 타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낮에 병원이라도 가야 하는 날에는 미리 남편과 시간을 조율해서 태워달라고 해야만 했으니 너무 불편했다. 또 미국에 와보니 아줌마들이 아기 뒤에 태우고 얼마나 혼자서 운전하고 이곳저곳 잘 다니던지 너무 멋져 보였다. 


나는 워낙 겁이 많고 운동신경, 방향감각, 공간지각 능력이 떨어지는 탓에 운전은 엄두도 못 냈다. 나는 운전하면 안 되는 팔자인가 보다~ 하고 느꼈던 건 한국에서 운전면허시험을 준비할 때였다. 내가 생각해도 대처능력이 너무 떨어지고, 속도를 무서워했으니 나와 타인을 위해 운전을 안 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찌어찌 면허는 땄지만 신분증 대용으로만 쓰는 장롱면허 신세였다.


미국에서 한두해 살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 남편이 집에 오기만을 기다리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운전면허를 딸 때까지만 해도 내가 사는 주는 한국 면허증을 미국 면허증으로 교환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필기시험부터 다시 준비를 했다. 필기시험은 2번 만에 합격했다.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갔는데 너무나도 기본 상식이 없어서 상식선의 문제를 마구 틀려버렸다. 예를 들어, '주행 중 타이어가 펑크 났을 때 어떻게 하는가?' 이런 질문이 있었는데 정답은 '브레이크를 펌프(발로 눌렀다 뗐다 하며)하며 옆으로 댄다'였다.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오답을 선택했다. 브레이크를 누르면 차 뒤에 붉은 등이 켜진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기본상식이 없어도 너무 없는 나 자신을 반성하며, 운전자 가이드를 달달 외웠고 결국 두 번째 시험에서 합격을 했다.


사실문제는 실기시험이었다. 미국은 도로주행이 의무가 아니어서 각자 알아서 연습을 한 후, 시험만 보면 된다. 보통 가족에게 배우며 전문적인 강사도 있다. 하지만 강사비용이 시간당 $20 정도 하기 때문에 나는 남편에게 배웠다. 남편은 매우 바빠 시간을 자주 낼 수가 없었고, 나는 배우는 속도가 매우 더뎠다. 1주일 연습하다가 남편이 학교일이 바빠 쉬고, 또다시 1주일 연습하다가 임신으로 입덧이 심해 2~3달 쉬고 하는 통에 영 실력이 늘지 못했다. 그렇게 띄엄띄엄 무려 1년을 꼬박 연습해서 실기시험을 보았다. 이번에도 한 번에 합격하지는 못했고 2번째에 합격을 했다.



가족끼리는 운전을 가르쳐주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가르쳐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답답하기 그지없고 안전과 직결되니 스트레스이고,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는 몸이 제대로 안 따라주니 섭섭하다. 나도 마음만 같아서는 전문 강사에게 돈을 주고 배우고 싶었지만 나 자신이 몇 시간의 연수로 운전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 수 없이 남편에게 운전을 배워 면허를 땄고 지금도 야무지게 혼나며 배우는 중이다. 나는 원래 내가 잘못한 일이 있어도 남편에게 되려 큰소리치며 사는 안하무인 와이프인데 운전대만 잡으면 쭈구리가 된다. 반면 자상하고 착한 남편은 내가 운전만 하면 목이 쉬어라 소리를 친다. 나같이 운전에 재능이 없는 사람은 10시간이 아니라 100시간, 200시간이라도 연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늘도 쭈구리가 되어 도로를 달린다.


면허를 딴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지금도 운전을 썩 잘하는 편은 아니다. 내가 사는 지역은 사람들이 비교적 여유가 있고 매너가 좋아 초보운전이지만 뒤에서 '빵빵' 경적을 울리는 경우는 몇 번 경험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한국처럼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그렇다. 미국에는 초보운전 스티커가 따로 없다. ESL 수업 중 하루는 선생님이 위 사진의 초보운전 문구를 가지고 왔다. "이것 봐~ 한국에서는 이렇게 운전 처음 하는 사람들이 나 초보자예요~ 하면서 차에 안내문을 붙이고 다닌대."라며 이걸 교실에 가지고 온 것이다.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이면 배려를 받는 한국의 운전문화와는 다르다.


이제 혼자 자신 있게 운전해서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마트 2군데, 자주 가는 병원과 치과, 남편 연구실 정도뿐이다. 하지만 이 정도 운전하는 것만으로도 삶이 많이 바뀌었다. 남편에게 부탁하지 않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으로 큰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올해 안에는 동네에 있는 한인마트 가는 길, 가까운 도서관 가는 길도 마스터할 목표다. 나도 이제 미국 아줌마가 다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