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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미국 이야기/유학생 와이프 일기

[유학생 와이프 일기] 미국 뚜벅이

서울에서 살았던 나는 장롱면허였다. 우리 집 도보 15분 내로 지하철 4개 호선이 다니는 초 역세권에 살았던 덕에 대중교통을 아주 잘 이용하고 다녔다. 자차란 돈 먹는 하마일 뿐라고 생각했다. 필요하면 렌트하면 그만이었다. 


미국은 한국과 달라 차가 없으면 매우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남편은 그냥 차 없이 살자고 주장했다. 우리가 사는 도시는 비교적 버스 노선이 잘 돼있는 곳이어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사실 남편의 TA 월급으로는 두 사람이 렌트 내고 숨만 쉬어도 간당간당하기 때문에 차를 굴리며 유지비가 나가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미국 생활의 첫 9개월을 차 없이 보내게 되었다.



미국은 인구밀도가 낮기 때문에 일부 대도시가 아니고서야 대중교통망이 한국처럼 촘촘하지 않다. 버스 간격도 긴 편이며, 공휴일이나 주말에는 배차간격이 정말 길다. 평소 20분에 한 번씩 다니는 버스라면 새벽시간이나 저녁시간, 주말에는 1시간~1시간 반에 한 번씩 버스가 오게 된다. 차를 한 번 놓치면 매우 곤란하기 때문에 어디를 갈 때면 항상 구글맵을 켜서 버스 시간을 확인했다. 또한 어디를 가려면 집에서 버스를 타고 다운타운까지 나간 후, 거기서 환승을 해야 했기에 시간이 더욱 많이 걸렸다. 차가 있으면 15분이면 가는 거리를 버스를 타고 가면 1시간 30분은 기본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버스로 가기라도 하면 다행이었다. 학과 모임이나 외부 행사로 가야 하는 곳은 종종 버스로는 갈 수 없는 장소가 많았다. 어디를 가려면 항상 라이드를 부탁해야 했다. 남에게 부탁을 잘 못하는 내 성격에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앞선 이야기들은 사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어떻게든 감수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장보기였다. 아파트 근처 마트에는 일주일에 3번 학생 아파트와 마트 사이에 셔틀버스를 운영했다. 시간 맞춰서 정류장으로 나가면 마트까지 데려다 주니 너무 고마운 서비스였다. 문제는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이 셔틀버스 서비스가 중단된 것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하나는 버스를 1번 갈아타고 편도 30~40분 정도를 걸려 가장 가까운 마트를 가느냐. 혹은 버스를 타지 않고 30분 정도 걸어서 가장 가까운 마트를 가느냐. 나 혼자 움직이면 1시간이라도 걷겠지만 일주일치 우유, 고기, 과일 등을 이고 지고 한여름 땡볕 아래 움직이려니 너무나도 괴로웠다. 한 달 정도를 버텼을까 도저히 이렇게는 못살겠다 싶었다. 남편에게 말했다. "그냥 차 사자. 오늘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