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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미국 이야기/유학생 와이프 일기

[유학생 와이프 그림일기] 미국행 비행기 34B

첫 데이트에서 남편은 박사과정 유학을 떠날 계획이라며 매우 조심스럽게 했었다. 당시에는 멋도 모르고 꿈이 있다는 것, 그리고 도전한다는 것이 참 멋져 보였다. 그 열정에 반해 결혼을 했다. 남편이 어학원 다니기 편하도록 역세권에 조그마한 전셋집을 얻고 남편은 유학 준비를 시작했다. 남편은 새벽같이 일어나 강남 어학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스터디를 하고 밤늦게 들어왔다. 자식 뒷바라지도 아직 안 해보았건만, 1년 여 남편이 어학원 다니는 동안 나는 살림도 하고 밥도 해주며 뒷바라지를 했다. 


남편은 매월 토플과 GRE 시험을 치렀다. 끝이 없을 것 같던 막연한 준비의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함께 논문을 썼던 미국의 한 교수님 실험실로 박사 과정을 떠나게 되었다. 교수님이 입학을 제안했을 때, 다행히 남편은 학교에서 요구하는 모든 영어 점수를 다 갖추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우리의 짐은 단출하였다. 신혼살림이라고 해봤자 한국에서는 1년여를 보낼 계획이었어서 모두 남편이 자취할 때 쓰던 물건들을 집에 갖다 놓았다. 2구짜리 녹슨 가스레인지, 증기 배출이 잘 안 되는 전기밥솥, 오른쪽 칸은 정말 망가져버린 김치냉장고 등을 꾸역꾸역 쓰고 있었다. 국제 이사로 미국까지 들고 올만한 수준의 물건이 되지 못했다. 국제 이사를 해서 한국에서 쓰던 가구나 살림을 미국까지 다 가지고 오는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는 모두 버리고 왔다. 그나마도 돈이 되는 물건들은 중고나라에 팔거나 가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중고 가전제품을 구입하는 업체 아저씨를 한 번 불러 냉장고와 세탁기를 치우고 나니 집이 텅텅 비었다. 


남편은 한국을 떠나기 전, 아웃렛에 들려 두꺼운 겨울용 파커를 하나 장만했다. 남편이 합격한 대학은 미국 북부에 있어 겨울이 매우 혹독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이것 만으로는 불안해서 유니클로에 가서 플리스를 몇 개 샀다. 나는 파마를 했다. 미국은 파마 값이 매우 비싸다고 들어서 뽀글뽀글 감고 왔다. 그 외, 기초화장품 한 세트를 사고, 안경과 렌즈를 추가로 구입하였다. 항공 수하물만큼만 짐을 챙기기로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살 물건은 없었다.



미주나 유럽으로 어학연수나 유학 길을 떠나는 사람은 비슷할 것이다. 남편과 나는 각자에게 허용된 최대한의 수하물을 끌고 미국까지 왔다. 커다란 캐리어와 이민가방은 각각 32 Kg 씩 꽉 채워 수하물로 부쳤다. 친정 엄마가 방앗간에서 빻아온 고춧가루가 5 Kg 정도 되었고, 대부분 옷가지로 가방을 채웠다. 무게를 초과하면 곤란하기 때문에 친정집에서 몇 번이나 무게를 재보며 짐을 쌌다. 작은 크기의 기내용 캐리어도 꽉꽉 채워 넣었고 빈 공간에는 급하게 구입한 화장품들과 렌즈까지 쑤셔 넣었다. 어깨에는 노트북 가방을 메고, 귀중품, 여권, 항공권을 넣어 입국장에 들어갔다.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지쳤다.



개인 사정으로 갑작스럽게 출국을 하게 되면서 출국 10일 전, 비행기 티켓을 샀다. 비행기 표는 언제나 그렇듯이 제일 싼 것으로 샀다. 여행사 직원이 제일 저렴한 항공권 마지막 1장 남은 걸 내가 샀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성수기에 원하는 날짜에 그것도 가장 싼 값으로 갈 수 있어서 나도 매우 기뻤다. 사실 항공권만 구입하였고, 여러 출국 준비로 바쁜 탓에 별도로 정보를 찾아보거나 좌석 지정을 하지는 못했다. 



출국 당일, 전날 중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남동생에게 짐을 끌게 해 인천공항에 왔고 바로 비행기에 올랐다. 내 덕에 동생도 정신없이 한 주를 시작하게 되었다. 비행기를 타고 보니, 10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인데 놀랍게도 기내에 개인 모니터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원래 유나이티드 항공에는 개인 모니터가 없다고 했다. 이것도 보르고 아무 준비도 안 하고 무작정 비행기를 탔던 나는 10시간 동안 멀뚱멀뚱 앞사람 등받이만 바라보며 미국까지 와야 했다. 더군다나 좌석 지정을 미리 하지 않은 탓에 자리는 가운데 자리. 내가 살 동네의 지역 공항까지 2번의 국내선을 더 탔어야 했는데, 국내선 역시 가운데 자리 당첨이었다!



드디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애초에 인천에서 출발할 때, 무려 3시간이나 비행이 지연된 탓에 뛰다시피 입국 심사를 받고, 짐을 찾고, 다시 국내선 게이트로 가서 짐을 부치고, 보안 심사를 받아 겨우 환승 편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이 국내선 비행기에도 역시나 개인 모나 터는 없었고, 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놀랍게도 기내식을 주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미국 내 국내선 비행은 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기내식을 주지 않는다. 많은 승객들은 미리 샌드위치나 햄버거 등을 사서 비행기를 탔다. 그걸 몰랐던 나는 그렇게 점심과 저녁을 굶었다. 물론 비행기에서 주문해 먹을 수도 있었는데, 비행기 놓칠까 봐 너무나도 긴장했던 터인지 그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 국내선 비행이 끝이 아니었다. 내가 앞으로 살 동네의 작은 지역 공항까지 한번 더 환승을 해야 했다. 이번에도 시간은 촉박했고, 공항은 너무나도 광활했다. 노트북 가방을 메고, 기내용 캐리어를 끌며 드넓은 공항을 경보하듯 가로질렀다. 다리는 쥐가 날 것 같았고, 배는 너무 고팠지만 보딩 시간에 맞춰 게이트에 도착했다. 계속해서 항공이 연착되면서 시간이 촉박했고, 공항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계산해보니 국제선 비행에서 아침식사로 나온 잉글리시 머핀이 이날의 처음이자 마지막 식사였고,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꼬박 굶은 상태였다. 밤 10시, 게이트 바로 맞은편에 있는 매점에서 급하게 요구르트를 하나 사서 마지막 비행기에 올랐다.



드디어 동네 공항에 도착했다. 반년만에 만난 남편이 반갑고 좋기보다는 드디어 무한 '비행-공항-비행-공항'의 루트를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텅 빈 학생 아파트에 도착했다. 전날 오전 친정집을 떠난 지 무려 24시간 만이다. 그렇게 나의 유학생 와이프 삶이 시작되었다.